“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은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절)


   학생이나 청년 때에 성구카드에 적힌 대로 달달 외우고 잘 보이는 곳에도 붙여 두었던 말씀이다.
그러나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개인적으로 다시 찾은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나는 아직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
러나 얼마 전부터 이 말씀이 가까이 다가온다.
일생 가운데 신앙의 성장과 영성의 진보에 따라 그때마다 기도와 찬송이 달라진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도 서서히 깊고 높아간다.
텔레비전의 광고에 나오는 물건을 바라보고 ‘저 것’하고 있을 때는 아직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광고가 눈에 띄지 않을 때에는 이미 그 물건은 집안에 들어 와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깥에 있을 때에는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과제다.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또 다른 말씀이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 온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선전광고탑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이 나를 통해 번역이 되어 보이지 않은 말씀으로 비춰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 그렇게 하나님은 이기적이냐고 따지지 말라.
이미 우리가 ‘죽든지 살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라고 외친지 오래 되었고,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목이 터져라 고함 친지가 30년이 지났다.


   왜 나의 형편은 몰라주시고 자신의 영광만 생각하고 달달 볶느냐고 따지지 말자.
그 분은 우리의 맹세를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해 감옥에 갇혀 두 손과 두 발이 착고로 간수와 함께 채워져 있는 바울의 고백이니
형편과 사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핑계의 여지가 없다.
가야한다.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2인3각의 운명이 된 우리가 아닌가?

아무도 피할 수도 도망갈 수 없는 과업이다.
단언하건데 멋있게 늙고 아름답게 숨을 거두려면 이 구원을 이루는 일에 투자를 하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춤꾼들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연습한단다.


   이제 경건의 연습이다.
나를 통해 그 분만 나타내기로 작정한 산 순교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그 분과 함께, 죽은 것도 그 분과 함께이다.
그 까짓것 이판 아니면 사판이다.
우리가 아니면 우리 아버지의 업적을 누가 드러내랴?
우리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누가 나타내랴?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았으면 이제 드러내는 연습을 하라.

십자가의 도를 닦고 또 닦아라.

이것이 바로 믿음의 화합이다.

방법은 말씀에 따라 영과 혼과 육이 수술된 채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이다.

죽음으로 주 예수그리스도를 극대화 시키겠다고 충성하는 자에게는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확실하게
씌우실 것이다(계2: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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