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일생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쳤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성경에는 두 가지 놀라운 비밀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이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전 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 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님의 긍휼로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 줄 알았다.

그분의 성육신 곧 무한한 하나님이

작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알았고

그 무한한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며

마리아의 작은 배안에서 갇혀 있다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사람들과 같이 인생을 사심과

우리의 죄와 옛사람을 처리하기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해 부활과 승천하심을 알았다.

곧 우리는 그분의 인격과 역사하심(십자가)을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 인줄 알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바울의 일생은 두 가지 질문의 삶이였다.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9:5”


그는 일생 그리스도가 누구인줄 알기를 원했다.


일생 그리스도 한 분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좋은 것조차도 배설물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우리가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지만 일생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는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했다.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행22:10”


 

그는 그리스도를 알기 원해서 말씀을 사랑하고 추구하고

수고했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수고 하는 자 되었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긍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또 하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 종종 주일날 교회 간다고 말할 때

교회가 하나의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성경을 보면서 건물이 교회가 아님을 알았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12:5”


또한 교회는 두려워했다고 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행 5:11”


벽돌이 기도할 수 없는 일이다.

건물이 두렵고 떨 수 없는 일이다.

교회는 살아 있는 한 인격체인 믿는 이들  곧 새사람인 것이다.


교회를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는 구절이 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1:2”


 

교회는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예수님의 피로 거룩한 성도들 곧 믿는 이들,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믿는 이들을 이야기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진 성도들,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다.


아무리 좋은 모임에 속해 있다 한다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여지지 않았다면

성도 곧 교회가 아닌 것이다.


나는 종종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모임이

우주 안에 유일한 모임이요

그들만이 참 교회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좋은 모임 안에 있다 한다할지라도

그 본인이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하여지지 않았다면

그는 거듭난 성도가 아니며

그 자신은 교회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째든 바울의 서신 서에 기록된 말씀처럼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먼저 거룩해져야

우리가 교회의 성분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면 죄 많고 부정한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는가

우리의 행위는 다 부정하다 우리의 선은 위선뿐일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으며 거룩해 질수 없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3:11”


 

우리는 다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거룩해 질수 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13:12”


이것이 먼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성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한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고행이나 수련이 아닌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


구약에 성막과 성전이 나온다.

성막은 주님과 교회의 예표이다.

성막은 바깥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있다.

지성소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인 법궤가 있다.

곧 성막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말한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성막이라고 말씀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4”


거하시매 곧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고 말씀한다.


성막은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요 성막의 실제는 예수님이시다.

성막 안에 번 제단, 물두멍, 진설병, .....

그리스도의 어떠한 면을 상징한다.

성막의 실제인 예수님이 우리가운에 장막을 치셨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일으켜 세우리라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19“


이 성전 되신 주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2:21”


이 성막 되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이제 교회가 예수님의 연장이요 성막의 실제이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줄알지 못하느냐고 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6:19”


마치 구약의 성막 안에 법궤, 하나님이 거하셨기에 성막이듯

신약은 예수 안에 하나님 거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이듯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인 것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곧 성전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곧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 성전 곧 교회인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는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교회라고 말했다.

교회는 한 인격 믿는 이들이다. 새 사람이다.


바울이 사울 이였을 때

사울은 주의 제자들을 핍박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4”


너무나 이상하고 놀라운 음성이었다.

사울은 누구를 핍박했나.

주의 제자들을 핍박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어찌하여 나의 제자들을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지 않았다.


나를 핍박하느냐 직접적으로 나라고 말씀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4, 행22:7, 26:14”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를 보았다.


자기가 미워하는 나사렛 예수는 죽음 안에 갇혀있지 않고 부활하였구나.

아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또한 “나” 나가 누구 인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하늘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핍박하느냐”

라고 말씀하지 않고 왜 직접적으로 “나”라고 하늘에서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것이 놀라운 비밀인 것이다.

놀라운 이상 곧 계시를 본 것이다.

믿는 이들과 주님은 바로 하나인 것이다.

주님의 피로 사함 받고 주님의 생명이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마치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을 때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2:23”


 

아담과 하와가 하나이듯 우리와 그리스도는 하나이기에

왜 나를 믿는 이들을 핍박하나 라고 말씀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를 핍박하느냐고 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주님 자신을 핍박했던 것이다.

왜냐면 주님과 믿는 이들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섰을 때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행26:19”


자신은 하늘에서 보인 음성을 거스르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의 지체인 아나니아의 인도를 받지 않았나.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행9:12”


이 이상을 본 바울은

서신 서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분명한 정의를 내렸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1:23”


바울은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을 핍박했던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4”


그래서 그의 서신에서 교회를 한 인격체로 말씀하셨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골1:18”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12:27”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5:30”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2”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12:5“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10:17“


교회는 물질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모이는 장소를 예배당이라고 말한다면

진리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예배당)이 교회라고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다.


나는 여기에서 신학적으로 교회가 무형교회니 유형교회니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공급 할 뿐이다.

물론 우리는 한 지역 안에서 사랑하는 지체들과 함께 모이기를 힘쓴다.


“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참되게 주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함께 구속함을 받은 형제자매들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모이기를 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알기 전에 게바 였다.

바로 주님의 생명이 없는 흙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로 예수님을 알았을 때

베드로 반석(돌)이 된 것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우리는 다 흙이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


우리는 아무소망이 없는 연약한 한 줌의 흙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구속과 거듭남을 통하여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산돌이 되었다.


“너희도 산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벧전2:5”

이 돌은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고 건축된다고 한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엡2:21”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돌인 우리가 또한 벽옥이 된다는 것이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계21:19”


이 벽옥은 바로 베드로를 말씀하고 있지 않는가


“열두 사도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계21:14”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다.

흙인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아 돌(반석)이 되고

또한 날마다 주님의 공급과 보살핌과 도움으로 인하여

우리는 변화되어 함께 연결된 벽옥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주님의 자녀들과 하나를 누릴 것이다.


새 예루살렘 또한 교회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성경은 새 예루살렘이 바로 하나님의 신부라고 말씀한다.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21:9”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21:10”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고 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지 않았나.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21:2“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씀한다.

주님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5“


주님은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전으로 제물을 드린 것이다.

어떤 건물이나 조직을 위해 자신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다.


그분은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셨고 희생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눅15:1


또한 제자들을 참으로 섬긴 분이시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요13:5“


그 분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주시고 섬겼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 곧 현재에도 주님은 우리를 섬긴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8:34”


그러나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장래에도 주님은 우리를 섬길 것이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눅12:37”


나는 이러한 말씀을 대할 때 내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10:45”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눅 22:26~27“


영원히 당신은 나를 섬기고 계십니다.

과거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전으로 고난을 당했고

또한 현재에도 날마다 나를 섬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섬기심이 없다면 나는 실족할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지금도 나를 소중히 품고 계시며 나를 위로하시며

격려하고 계시며 중보기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장래 영원 안에서도 나를 섬길 것이다.

내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주님이 이렇게 섬겨주시니...


우리가 무엇이기에 당신은 이렇게 우리를 섬깁니까?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10:45“


아무것도 아닌 나를 당신은 과거에도 섬겼고

지금도 섬기고 계시며 장래에도 섬길 것이다.


어찌 이렇게 끝가지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섬기고 계십니까.

나는 당신의 사랑을 생각할 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자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서4:10”


나는 스스로 봉사를 할 수 있으며,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모습을 정확히 알 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나의 봉사는 너무 부족하며 허물이 많은 것이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며

또한 이 주님이 우리를 지금도 섬기고 계시며

장래에도 우리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 감동되어 나는 당신의 노예가 되어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자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한 바울의 일생처럼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작은 지체가 되길 소원합니다.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출21:5-6“


이젠 나의 상전되신 주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기에

나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를 일생 사랑하는 자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전되신 주님과 교회를 사랑함으로

우리가 자유하지 않기를 원하며

진정 당신의 종으로 날마다 주인의 음성을 듣기위해

문 앞에서 주인의 얼굴과 주인의 음성을 기다리는

당신의 노예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