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일생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쳤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성경에는 두 가지 놀라운 비밀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이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전 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 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님의 긍휼로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 줄 알았다.
그분의 성육신 곧 무한한 하나님이
작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알았고
그 무한한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며
마리아의 작은 배안에서 갇혀 있다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사람들과 같이 인생을 사심과
우리의 죄와 옛사람을 처리하기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해 부활과 승천하심을 알았다.
곧 우리는 그분의 인격과 역사하심(십자가)을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 인줄 알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바울의 일생은 두 가지 질문의 삶이였다.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9:5”
그는 일생 그리스도가 누구인줄 알기를 원했다.
일생 그리스도 한 분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좋은 것조차도 배설물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우리가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지만 일생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는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했다.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행22:10”
그는 그리스도를 알기 원해서 말씀을 사랑하고 추구하고
수고했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수고 하는 자 되었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긍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또 하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 종종 주일날 교회 간다고 말할 때
교회가 하나의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성경을 보면서 건물이 교회가 아님을 알았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12:5”
또한 교회는 두려워했다고 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행 5:11”
벽돌이 기도할 수 없는 일이다.
건물이 두렵고 떨 수 없는 일이다.
교회는 살아 있는 한 인격체인 믿는 이들 곧 새사람인 것이다.
교회를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는 구절이 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1:2”
교회는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예수님의 피로 거룩한 성도들 곧 믿는 이들,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믿는 이들을 이야기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진 성도들,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다.
아무리 좋은 모임에 속해 있다 한다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여지지 않았다면
성도 곧 교회가 아닌 것이다.
나는 종종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모임이
우주 안에 유일한 모임이요
그들만이 참 교회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좋은 모임 안에 있다 한다할지라도
그 본인이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하여지지 않았다면
그는 거듭난 성도가 아니며
그 자신은 교회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째든 바울의 서신 서에 기록된 말씀처럼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먼저 거룩해져야
우리가 교회의 성분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면 죄 많고 부정한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는가
우리의 행위는 다 부정하다 우리의 선은 위선뿐일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으며 거룩해 질수 없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3:11”
우리는 다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거룩해 질수 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13:12”
이것이 먼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성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한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고행이나 수련이 아닌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
구약에 성막과 성전이 나온다.
성막은 주님과 교회의 예표이다.
성막은 바깥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있다.
지성소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인 법궤가 있다.
곧 성막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말한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성막이라고 말씀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4”
거하시매 곧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고 말씀한다.
성막은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요 성막의 실제는 예수님이시다.
성막 안에 번 제단, 물두멍, 진설병, .....
그리스도의 어떠한 면을 상징한다.
성막의 실제인 예수님이 우리가운에 장막을 치셨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일으켜 세우리라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19“
이 성전 되신 주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2:21”
이 성막 되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이제 교회가 예수님의 연장이요 성막의 실제이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줄알지 못하느냐고 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6:19”
마치 구약의 성막 안에 법궤, 하나님이 거하셨기에 성막이듯
신약은 예수 안에 하나님 거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이듯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인 것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곧 성전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곧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 성전 곧 교회인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는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교회라고 말했다.
교회는 한 인격 믿는 이들이다. 새 사람이다.
바울이 사울 이였을 때
사울은 주의 제자들을 핍박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4”
너무나 이상하고 놀라운 음성이었다.
사울은 누구를 핍박했나.
주의 제자들을 핍박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어찌하여 나의 제자들을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지 않았다.
나를 핍박하느냐 직접적으로 나라고 말씀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4, 행22:7, 26:14”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를 보았다.
자기가 미워하는 나사렛 예수는 죽음 안에 갇혀있지 않고 부활하였구나.
아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또한 “나” 나가 누구 인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하늘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핍박하느냐”
라고 말씀하지 않고 왜 직접적으로 “나”라고 하늘에서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것이 놀라운 비밀인 것이다.
놀라운 이상 곧 계시를 본 것이다.
믿는 이들과 주님은 바로 하나인 것이다.
주님의 피로 사함 받고 주님의 생명이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마치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을 때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2:23”
아담과 하와가 하나이듯 우리와 그리스도는 하나이기에
왜 나를 믿는 이들을 핍박하나 라고 말씀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를 핍박하느냐고 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주님 자신을 핍박했던 것이다.
왜냐면 주님과 믿는 이들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섰을 때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행26:19”
자신은 하늘에서 보인 음성을 거스르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의 지체인 아나니아의 인도를 받지 않았나.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행9:12”
이 이상을 본 바울은
서신 서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분명한 정의를 내렸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1:23”
바울은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을 핍박했던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4”
그래서 그의 서신에서 교회를 한 인격체로 말씀하셨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골1:18”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12:27”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5:30”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2”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12:5“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10:17“
교회는 물질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모이는 장소를 예배당이라고 말한다면
진리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예배당)이 교회라고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다.
나는 여기에서 신학적으로 교회가 무형교회니 유형교회니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공급 할 뿐이다.
물론 우리는 한 지역 안에서 사랑하는 지체들과 함께 모이기를 힘쓴다.
“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참되게 주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함께 구속함을 받은 형제자매들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모이기를 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알기 전에 게바 였다.
바로 주님의 생명이 없는 흙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로 예수님을 알았을 때
베드로 반석(돌)이 된 것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우리는 다 흙이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
우리는 아무소망이 없는 연약한 한 줌의 흙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구속과 거듭남을 통하여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산돌이 되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벧전2:5”
이 돌은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고 건축된다고 한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엡2:21”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돌인 우리가 또한 벽옥이 된다는 것이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계21:19”
이 벽옥은 바로 베드로를 말씀하고 있지 않는가
“열두 사도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계21:14”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다.
흙인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아 돌(반석)이 되고
또한 날마다 주님의 공급과 보살핌과 도움으로 인하여
우리는 변화되어 함께 연결된 벽옥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주님의 자녀들과 하나를 누릴 것이다.
새 예루살렘 또한 교회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성경은 새 예루살렘이 바로 하나님의 신부라고 말씀한다.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21:9”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21:10”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고 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지 않았나.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21:2“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씀한다.
주님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5“
주님은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전으로 제물을 드린 것이다.
어떤 건물이나 조직을 위해 자신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다.
그분은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셨고 희생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눅15:1”
또한 제자들을 참으로 섬긴 분이시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요13:5“
그 분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주시고 섬겼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 곧 현재에도 주님은 우리를 섬긴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8:34”
그러나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장래에도 주님은 우리를 섬길 것이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눅12:37”
나는 이러한 말씀을 대할 때 내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10:45”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눅 22:26~27“
영원히 당신은 나를 섬기고 계십니다.
과거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전으로 고난을 당했고
또한 현재에도 날마다 나를 섬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섬기심이 없다면 나는 실족할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지금도 나를 소중히 품고 계시며 나를 위로하시며
격려하고 계시며 중보기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장래 영원 안에서도 나를 섬길 것이다.
내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주님이 이렇게 섬겨주시니...
우리가 무엇이기에 당신은 이렇게 우리를 섬깁니까?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10:45“
아무것도 아닌 나를 당신은 과거에도 섬겼고
지금도 섬기고 계시며 장래에도 섬길 것이다.
어찌 이렇게 끝가지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섬기고 계십니까.
나는 당신의 사랑을 생각할 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자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서4:10”
나는 스스로 봉사를 할 수 있으며,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모습을 정확히 알 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나의 봉사는 너무 부족하며 허물이 많은 것이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며
또한 이 주님이 우리를 지금도 섬기고 계시며
장래에도 우리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 감동되어 나는 당신의 노예가 되어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자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한 바울의 일생처럼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작은 지체가 되길 소원합니다.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출21:5-6“
이젠 나의 상전되신 주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기에
나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를 일생 사랑하는 자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전되신 주님과 교회를 사랑함으로
우리가 자유하지 않기를 원하며
진정 당신의 종으로 날마다 주인의 음성을 듣기위해
문 앞에서 주인의 얼굴과 주인의 음성을 기다리는
당신의 노예가 되길 소원합니다.
옥한흠 목사 “교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크리스채너티투데이와 인터뷰 갖고 한국교회 문제 지적 [2009-12-30 07:00]
“사람의 힘으로, 프로그램 가지고는 도무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비정상적인 낙관주의가 판치는 상황이라 걷잡지 못할 것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기독교 스타도 나올 것이다.
긍정의 복음을 강조하는 사람의 글이 아무런 비판 없이 나오는 것도 문제고
그 흐름이 한국교회를 주도하는 쪽에서 비롯되는 것도 안타깝다.
그러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분별력을 잃었다.
이런 시대를 구원하려면, 나부터 지도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정도를 걷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다.
나부터 용기가 없다.”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2010년 1월호에 게재된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 옥한흠 원로 목사의 인터뷰 기사는
한국교회에 대한 옥 목사의 냉철한 현실인식들로 가득했다.
그는 어두운 면들을 돌려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날카로웠다.
옥 목사가 지적한 한국교회 현실은, 우선 “교회가 형식만 남았고 프로그램만 남았지 사실은 생명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는 것.
“그래서 자녀들은 교회에서 큰 감동을 못받고 돌아와서는 즉시 사회의 혼탁함에 휩쓸리고, 가치관, 사고방식, 생활방식조차
부지불식간에 그대로 묻어서 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어떻게 할지 모르고 ‘때가 되면 저애들은 저애들대로 살겠지’라고 체념하는 부모의 분위기가
지금 한국교회의 분위기”라고 옥 목사는 지적했다.
“한국교회는 침체가 문제 아니라 본질 파괴가 문제”
“요즘은 비관적인 말 할 자유도 없는 기막힌 상황”
이것이 바로 교회의 ‘세속주의’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교회가 “세상적인 가치를 거의 다 수용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성경적으로 적당히 포장해서 수용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꼬집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것은 “100% 목회자의 잘못”이며 “교회 침체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옥 목사는 세속주의와 함께 목회자의 공급 과잉을 또 하나의 병폐로 꼽았다.
그는 “목회자가 넘치기 때문에 출혈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경쟁에서 밀린 패배자는 모든 사고를 부정적으로, 냉소적으로,
비판적으로 갖게 되고 이런 추세가 계속해서 심해질 수 있다”며 “그럴수록 교회의 힘이 파괴적인 쪽으로 쌓이면서
누수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목회자가 넘치는 현상적 문제 이면에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 풍토”가 있다고 했다.
옥 목사는 “경쟁이 심해지면서 점점 목회현장은 살벌해지고, 그러다보면 교회 밖 사람들에게 비치는 교회 이미지도
기업이나 구멍가게 같은 이미지로 박힌다.
의식있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반면 기존 성도들 뿐만 아니라
목회자도 안정된 교회 분위기에서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심해진다”면서
“대형교회로의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진다.
그러면서 점점 교계 내에는 심각한 갈등구조가 생긴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구도로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글을 통해 전해진 옥 목사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흥분이 있었다.
그는 “(한국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비상섭리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는 사람의 힘으로, 프로그램 가지고는 도무지 대안이 없다”며
“이런 소리를 하면 비관론자라며 돌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만한 자유도 없는 기막힌 상황”이라는 말까지 했다.
“난 포장된 사람… 사랑의교회 제대로 못 갖춰놔 후회”
“저출산·고령화 본격화될 미래, 교회의 모습 상상 초월”
옥 목사는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말로
자신의 지난 40여 년간의 목회를 돌아봤다.
그는 지난 시절의 회한을 묻는 질문에 “말로하기 힘든, 목회자의 양심으로 나만이 아는 회한이 어찌 없겠는가”라며
“목회자 가운데 완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처럼 포장된 사람은 더 그렇다.
노출이 안 됐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아픔이 있을 수 있다.
차라리 노출이 되고 돌을 맞고 그랬으면 그것으로 씻김을 받았다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텐데…”라고 끝을 흐렸다.
사랑의교회도 그의 회한 가운데 하나였다.
옥 목사는 “사랑의교회를 좀 더 예수님의 제자다운 교회답게, 성도들을 좀 더 제대로 갖춰 놓고
물러나 앉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깨어 있으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뒤집어 놓고도 모자람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옥 목사는 한국교회 미래에 대해서도 말했다.
“고령화 사회가 본격화되고, 출산이 저하되면 교회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문 닫는 교회도 생길 것”이며 “기후변화나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터지면, 한국 경제는 삽시간에 뒤엎어질 수 있다.
그런 위기를 만났을 때 교회 문화가 어떻게 바뀔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불과 20년 후의 이야기”라고 그는 덧붙였다.
대안을 제시했는데,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교회들은 연합해서 그 교회 안에 있는 평신도의 전문성을 살려서
한국교회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길을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전문성을 가진 NGO들이 함게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하고 격려하는 일도 같이 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옥 목사는 “한 시대가 번영하면, 그 다음 세대는 쇠퇴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 중 하나인 것 같다”면서 “(자신이) 좋은 시절에 목회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인지,
어떤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것 모두가 감사하다.
부흥기를 경험하면서 목회한 사람들이 제대로 잘해야 다음 세대가 쇠락하지 않는데,
지금 교회 모습을 보면 우리가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허무하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니까,
뭔가 잘못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는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